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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유예·파월 해임 시도 철회시키는 데 큰 역할

 

 

“파월(연준 의장)을 해고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22일 오후 주식시장이 끝난 뒤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자 금융시장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시간 외 거래에서 미국 3대 주가지수는 2%가량 급등했고, 달러 가치는 1% 정도 올랐고,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연 4.3%대로 하락(국채 가격 상승)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파월 연준 의장을 공격하자 벌어졌던 미국 자산 투매 현상이 누그러진 것이다. 전날만 해도 트럼프는 파월을 ‘루저 중 루저(major loser)’로 모욕했는데, 자신의 말을 주워 담으며 시장을 안정시켰다.

 

트럼프 이너서클 중 일부는 시장이 연준 독립성을 중시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분석했다. 특히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 트럼프에게 시장의 시각을 입력시키고 있다는 관측이 많다. 베선트는 앞서 18일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통화정책을 ‘보존해야 할 보석 상자’라고 표현하면서, 트럼프가 파월을 축출하려 한다는 것에 대해 “그런 우려는 없다”고 하기도 했다.

 

그래픽=김성규

 

◇1기 행정부 ‘어른의 축’ 역할

 

이날 트럼프의 발언에 앞서 베선트 장관은 JP모건체이스가 주최한 비공개 투자자 행사에서 “매우 가까운 시일 내 대중 무역 전쟁이 완화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현재 수준의 145% 관세율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데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고 했다. 이 발언이 알려지자 역시 미국 3대 주가지수가 일제히 2% 이상 반등하며 환호했다.

 

그간 베선트는 폭주하는 트럼프를 적절히 막아 세우는 역할을 해 왔다. 1기 트럼프 행정부 때 트럼프의 충동적 결정을 자제시키며 동맹 파괴를 저지해 ‘어른들의 축(axis of adults)’으로 불렸던 존 켈리 전 백악관 비서실장,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 허버트 맥매스터 전 국가안보보좌관을 떠올리게 한다. ‘월가 황제’로 불리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도 15일 FT 인터뷰에서 “그(베선트)를 좀 아는데, 그는 어른(an adult)이라고 생각한다. 무역 협정 협상에 나서야 할 사람은 아마도 그일 것”이라고 했다.

 

베선트는 전형적인 월가 인사다. ‘헤지펀드의 전설’로 불리는 조지 소로스의 측근으로, 소로스가 1992년 파운드화 공매도 공격으로 영란은행을 파산 위기까지 몰아넣었을 때 이를 옆에서 도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민주당 앨 고어 대선 후보를 지지하기도 했던 베선트는 2015년 독립해 투자회사 키스퀘어그룹을 세웠고, 트럼프 선거 캠프에 약 200만달러(약 28억원)를 기부한 뒤 월가의 지지를 받으며 트럼프 내각에 들어갔다.

 

◇트럼프 관세전쟁 폭주 저지

 

베선트가 트럼프의 관세전쟁을 앞장서서 지지한 것은 아니라는 평가가 많다. 지난해 베선트는 자신의 키스퀘어그룹 고객에게 보낸 메모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 복귀할 경우 ‘광란의 1920년대(Roaring Twenties)’에 버금가는 ‘경제적 대혼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베선트 말 먹히고 있지만 영향력엔 한계”

 

그러면서도 그는 “관세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미국 산업 르네상스의 좋은 출발점 역할을 할 수 없다”며 “관세는 항상 장전되어 있지만, 거의 발사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결국 관세전쟁은 발발했고, 베선트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이른바 ‘좋은 경찰(good cop)’ 역할을 했다. 지난 9일 트럼프가 90일간 상호 관세 유예를 밝힌 것도 베선트의 조언 때문으로 알려졌다. 그날 오전 강성 관세전쟁파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고문이 잠시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을 확인한 베선트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함께 백악관 트럼프 집무실로 달려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 유예를 설득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보도했다. 베선트는 ‘시장을 안정시키려면 관세 유예 결정을 즉시 발표하자’고 설득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소셜미디어에 유예 발표를 할 때까지 집무실에서 버텼고, 당시 자리를 비운 나바로는 트럼프가 올린 ‘관세 유예’ 글을 읽고 깜짝 놀랐다고 WSJ는 전했다.

 

트럼프의 관세 유예 발표 직후 베선트는 기자들에게 “트럼프가 상호 관세 부과를 선언했기 때문에 많은 나라가 협상을 서둘렀다”며 “(유예는)트럼프가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협상 전략”이라고 추켜세워 트럼프의 심기를 편안하게 했다.

 

다만 베선트가 계속 트럼프의 귀를 잡을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1기 트럼프 행정부 때도 트럼프의 길을 막아선 ‘어른’들이 결국 물티슈 뽑아 쓰듯 버려졌기 때문이다. 로버트 커트너 브랜다이스대 교수는 “베선트의 존재가 월가를 안심시키고 있다는 것을 트럼프가 알고 있기 때문에 베선트의 말이 먹히는 것”이라면서도 “베선트의 영향력에도 한계가 있으며, 트럼프는 금융시장이 타격을 입더라도 자신의 정책을 고집할 수 있다”고 했다.

 

☞어른들의 축(Axis of Adults)

트럼프 1기 행정부 초기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동맹을 외면하는 트럼프의 무모한 리더십을 견제하던 미군 장성 출신의 중량급 관료들을 한데 모아 일컫는 말. 미국의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가 사용한 후 유행했다.

 

 

출처 : 조선일보